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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8 호 [기자석]"다리는 있고 머리는 없는" 소득주도성장, 머리까지 위태롭다

  • 작성일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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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146
이해람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에 이어 소득주도성장은 한 정권의 경제정책을 조롱하는 상징이 되었다전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은 순항하는 듯 했다그러나 지금 소득주도성장은 좌초된 것처럼 보인다기업보수성향 언론과 야당의 집중공격을 받으며 소득주도성장은 괴상한 것으로 변모했고정부와 여당은 자가당착에 빠져 동력을 잃고 말았다.


소득주도성장은 한국의 기울어진 경제구조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한다이윤주도에 의한 친자본적 성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함께 침체되었고 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임금주도에 의한 친노동적 성장이다소득의 불평등과 금융 탈규제라는 문제를 지적하며 국내 케인즈주의자들은 부패와 수출이 주도하는 한국 경제체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포스트 케인주의자들은 임금이 증가하면 노동생산성도 증가해 자본성장이 가능하다는 공식까지 이끌어냈다[Δy(노동소득분배율의 성장률)=Δw(1인당 임금 성장률)-Δp(노동생산성의 성장률)]. 이와 함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제기된 것이 최저임금인상고용보장 등의 노동정책과 금융규제임금분배이다.


소득주도성장은 2014년 즈음 한국 정치 전반에 등장하면서 정치 진영을 불문하고 지지를 얻었다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가계소득 중심의 내수부양을 강조했고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소득주도성장새로운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이처럼 소득주도성장은 진보보수 경제관에 의해 방향이 엇갈리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이론 기조는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한편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자 2015년 국회 토론회에서 사회자가 머리는 있지만 다리가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거시 담론으로서 여기고이를 추진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성은 1인당 산출량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집합적 노동 개념이다또한 은행과 정부의 정책기술혁신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소득주도성장 체제에서도 성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거시적 담론으로서의 소득주도성장에 접근하지 못했을 뿐더러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부족했다최저임금 1만 원 정책비정규직의 정규직화사내유보금 과세기업 간 갑을관계 해소재벌개혁 모두 실패했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노동법 개악친기업 정책긴축재정 추진으로 계급 간의 간극을 더 벌려내기만 했다소득주도성장의 근본적 지향을 외면한 채 스스로 소득주도성장의 다리를 잘라낸 것이다.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다그럼에도 계속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빈곤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다한국이 OECD 국가 중 상대빈곤율이 3번째로 높다그러나 시장에 대한 규제가 매우 부족하고, GDP 대비 투자하는 복지비용이 11%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주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국민 50%가 무주택자지만 임대주택은 10%, 빈집은 5%이다그럼에도 주거비는 시장이 정하고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는 정부와 서울시는 분양주택 공급정책만 펼치고 있다청년들은 주거난에 허덕이지만 기업과 부동산 투기자들은 배를 두들긴다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득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 중심의 혁신에 포커스를 둘 것이 아니라 후보자 시절 부르짖었던 사람 중심의 복지를 확대하고 본래의 소득주도성장을 되돌아봐야 한다그것이 좌초된 소득주도성장을 살릴 유일한 길이자 노동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