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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7 호 [책으로 세상 보기] 4, 67, 7834

  • 작성일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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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람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

저자 채효정

출판사 교육공동체 벗


4, 67, 7834.


현 한국 사회의 대학생은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성인이라니, 칭찬이더라도 누군가 나를 그렇게 칭한다면 낯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많은 교수 역시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단에 올라 연구, 강의하는 교수도, 이들에게 교육받고 토론하는 학생도 지성인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지성인은 누구인가?


이 책은 경희대학교 시간강사였으나 ‘해촉’된 채효정 해직강사가 경희대학교 캠퍼스 내 잔디밭에서 진행한 강의 내용을 토대로 쓰였다. 인문주의를 표방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모순적이게도 기업화가 거듭 진행되다가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 대학 재정난을 이유로 67명의 시간강사를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4, 67, 7834. 67명의 시간강사가 해고된 지 4년이 지났다. 촛불이 일어났고, 정권이 바뀌었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올해 8월, 전국 대학에서 총 7,834명의 시간강사가 실직했다. 촛불은 혁명이 될 수 없었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지도 못했고, 대통령만 바꿔놓았을 뿐 저항의 바람이 일터, 학교까지 불어오지도 않았다.


저자는 대학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 대학의 현실을 면밀히 진단한다. 지성인을 길러내야 할 대학에 왜 지성인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인가. ‘대학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저자가 진단한 대학에는 놀랍게도 노동도, 학생도, 교수도, 교육도, 정치도, 주인도 없다. 노동하는 사람은 있으나 ‘노동자’는 없고, 배우는 ‘고객’은 있지만 ‘학생’은 없다. 사회에 유의미한 담론을 제시하고 모순구조를 지적해야할 대학의 역할은 온 데 간 데 없고, 돈을 따내기 위한 비즈니스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정부, 기업, 교육기관을 순환체로 두며 굳건해지고, 수많은 조민을 양산한다.


우리 모두 힘들다라는 자각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왜 힘든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바꾸어야하는지는 배운 적도 없고 고민도 부족하다. 저자는 대학에서, 나아가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빼앗긴 대학을 탈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학생, 교수가 함께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는 대학을 교육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실현하기 위해서 저자는 생각하지 말고 행동 먼저 하라고 조언한다. 행동은 생각을 촉구하지만 생각은 행동을 유보토록 한다. 거듭된 실천 속에서 가치판단의 준거가 발생한다는 진리를 반영하고 있다.


“편에 서서 선을 넘자” 대학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홀로 선을 넘으면 잡범이지만 모두가 선을 넘으면 저항이다. 구성원 모두가 정치적 주체로서 연대하여 편에 서고, 함께 대학과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여 선을 넘자.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