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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7 호 [사설]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 작성일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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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람


화합의 길은 이리도 험난한 것인가? 나라 안팎으로 무역 분쟁, 국가간 갈등, 보수와 진보간의 균열 등으로 시끌시끌하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북정책, 소득주도성장으로 파급된 경제정책,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정책 등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이 끝이 없다. 우리나라의 중심부라 할 만한 광화문. 어느덧 모든 희망과 욕망의 분출구이자 집결처가 된 광화문광장에서는 상시적으로 기습집회가 열리고 있다. 자고 나면 시위를 위한 천막이 늘어나 있고, 확성기 소리는 높아져 있다. 참다운 소통과 휴식의 공간이 되어야 할 ‘시민의 품’이 시위의 현장이자, 천막농성의 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광화문은 수많은 군중의 민의가 모이던 곳이요, 우리나라의 초기 민주주의가 싹터 나오던 곳이다. 광화문에서 덕수궁 앞 시청까지 이르는 길은 최초의 시민단체로 출범한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며 민의를 수렴하던 역사의 현장이다. 근대적 의회설립을 허락하지 않는 고종황제를 상대로 정치적 투쟁을 벌이던 곳이요, 이름 없는 필부들이 돈을 갹출하여 시위대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며 민의를 성숙시켜 나가던 곳이요, 그 결과 의회설립을 허락받아 근대적 시민사회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된 상징적인 곳이다. 당대 역사는 인민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착되지 못했지만, 진보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구호와 열망이 폭발적으로 움터 나오던 곳이다. 그 역사를, 역사의 현장을, 역사의 정신을 ‘촛불혁명’이 이어받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더 나은 사회, 품격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하나가 되었던 광화문은 지금 갈기갈기 찢어진 채 분열되고 있다. 세월호 추모 천막을 둘러싼 갈등에 이어 우리공화당의 천막, 민노총의 천막처럼 상시적인 것 외에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천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천막정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시민들의 울화감, 냉소, 정치적 외면, 상대편에 대한 공격성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광장은 이념과 성향을 떠나 모든 시민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념과 성향이 다른 각각의 집단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분별하게 농성하고 광장을 점유해도 괜찮은 것인가? 시민의 권리라는 이유로 냉대와 야유와 고함질은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을 조율해 나갈 지혜로운 해법은 없는 것인가?


달리 생각해보면 이는 비단 광화문광장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직장이나 대학사회 내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발생되는 불협화음들이다. 근무연차가 다르고, 위계가 다르고, 소속과 계열이 다르다고 하여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를 짓밟고 무시한다. 상대가 가져갈 이득 보다 내가 챙겨야 할 권리와 이득이 더 중요하다. 소속집단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놓은 동량들은 무책임, 무원칙, 무소신으로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규정은 있으나 마나요, 온갖 집단에서 갑질이 난무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바깥세상 역시 민족주의의 파고를 넘어 세계시민주의로 나아가자 제창하건만 역사는 진보하지 못하고 되레 뒷걸음쳐 무수한 갈등을 뿌리내린다. 미중간의 무역전쟁은 세계경제 침체위기로 이어지고 있고, G2 국가간의 대립은 신판 제국주의의 충돌이라 할만하다.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로 촉발되기 시작한 한일간의 갈등은 외교를 넘어 경제로, 안보문제로 증폭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은 헌법을 수정하여 ‘보통국가’의 길을 걷고자 한다. 사실상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한말의 정국을 보는 듯 끔찍한 기시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다시 서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은 수많은 관료들의 무책임도 문제였지만,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고종의 온유한 리더십이 더 큰 문제였다. 


우선 우리 안의 균열과 대립이라도 마감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열의 언어와 작별하여야 한다. 다름을 이유로 거부하고 차별하는 편협한 사고를 경계하여야 한다. 교묘한 언어적 수사의 가식성에 대해, 도덕의 가면을 쓴 위선에 대해 준엄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으로 사회를 들여다 볼 줄 아는 청년층이 두터워야 한다. 깊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대립과 갈등, 균열, 전쟁과 같은 싸움을 종식시킬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리더십이 소환되어야 한다. 치열했던 여름은 가고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에는 모두의 희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