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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4 호 [사설] 갈등의 시대를 넘어서려면

  • 작성일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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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956
이해람

현재 우리 사회는 많은 영역에서 극단적 갈등의 상황이 존재하거나 증폭되어 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우와 좌로 나누어진 이념의 갈등, 구세대와 신세대로 구분되는 세대 간 갈등, 남성과 여성 간의 젠더 갈등 등 실로 갈등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종류와 내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갈등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하여 왔고 지속적인 논쟁의 이슈가 되어 왔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단순히 논쟁의 차원을 벗어나 극단적인 표현과 개인적인 인신공격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를 누르고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야 말겠다는 결연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무릇 사회는 현재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의해 발전하고 균형을 이루어 왔다. 당면한 현실에 만족하고 그 상황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면 현상의 유지는 고사하고 퇴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사회변화를 위한 담론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을 위한 토론과 논쟁은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정당한 방법과 절차에 따를 때에만 그 결과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정당성은 차치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자신이 속한 진영을 대변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우며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제압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모든 생각과 이념은 각각 타당하고 명확한 근거가 있으며, 각 주장에는 합리적인 기반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절대 무오한 이념과 사상이 존재했다면, 이 세상은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을 것이며, 다양한 학문과 사회시스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현대의 우리는 하나의 틀 속에서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생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생활이 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다양한 이념과 문화 간의 갈등이나 충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다양한 문화가 갖고 있는 특성을 인정하고 각각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공생해 나가는 방법, 두 번째는 소수의 집단에서 지배적인 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방법, 세 번째는 기존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통합한 새로운 제3의 문화 내지는 이념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지배적인 이념이나 문화 집단이 자신과는 다른 다양한 소수의 의견이나 사상을 지배하거나 말살해 버리는 방법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르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네 가지의 방안 중에서 가장 강제력이 크고, 통합의 가능성이나 수용도가 낮은 방안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치를 강제할 때 생기는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하고, 때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 문화 간 갈등을 조장하거나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된다.


근대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이념적 갈등이 있었고, 때로는 하나의 이념이 다른 이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였으며, 나아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핍박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를 경험했던 이른바 기성세대들이 사회의 주축이 된 지금, 우리는 과연 지난 시절 그토록 염원하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현재 상황만을 두고 평가해 본다면 그 답은 ‘아니오’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사상과 이념을 강요받았던 세력이 또 다른 사상과 이념을 강요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또 다른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세상을 지배했던 이념과 가치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절대로 하나의 방향으로만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심지어 한 시대에서의 선이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는 없어져야 할 악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우리는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위한 건전한 논의와 토론이 보장된 사회에서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념의 갈등이나 세대 간의 갈등, 그리고 젠더 간의 갈등 등은 이전에도 존재했고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극단적인 대립과 반목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이러한 갈등이 이용되고 점점 증폭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는 자신과 다른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인정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과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