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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2 호 [책으로 세상보기] 한 스푼의 시간 (2016)

  • 작성일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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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490
홍연주

  

지은이: 구병모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세상에 스며든 로봇


어쩌면 인간이 없는 세상보다 로봇 없는 세상이 더 현실감 없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없이 못 사는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고, 인공지능 스피커는 이름까지 불리며 대화 상대가 된다. 로봇 청소기는 제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애착을 받아, 고장이 나더라도 버려지기보다 수리받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무인 인공위성이 우주를 쏘다니는 것을 보면 인간 없는 세상은 이미 시작된 게 아닐까?


‘한 스푼의 시간’ 속 동네 세탁소 주인 명정은 아내와 외동아들이 먼저 떠난 자리를 쓸쓸히 지키며 살아간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 유학을 떠나 이민까지 가고는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들에게 때늦은 택배를 받는다. 상자에 들어있는 것은 열일곱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아니 그처럼 생긴 로봇이다. 명정의 아들이 연구하던 인공지능 로봇의 샘플로, 아들의 죽음과 회사의 도산 이후 떠돌아다니다가 명정에게까지 흘러온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어색한 티가 조금 나지만 제법 사람 구색은 갖추었다. 로봇이 아들 얼굴과 겹쳐 보이는 명정은 로봇에게 ‘은결’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은결은 명정의 세탁소 일을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


세탁소에 사람 노릇을 하는 로봇이 등장하자 동네 사람들은 낯설어하면서도 금세 익숙해진다. 은결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점차 적응해간다. 나는 이 모습이 인간의 사회화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사회화’에는 ‘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함’이라는 뜻이 있다. 물론 은결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그에 대해 사고하였다. 일종의 시스템 처리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결국 은결은 인간의 삶을 학습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노화과정을 거치지만 로봇은 부품을 교체하고, 정보를 업데이트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세주가 아기를 낳아 키우고, 꼬마였던 시호와 준교가 성인이 되고, 명정이 숨을 거둘 만큼 시간이 흘러도 은결은 변한 것이 없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은결과 분명 달랐다. 명정은 은결에게 시간에 대해 말했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은결이 영원히 산다는 것도 아니다. 시호와 준교도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손녀를 돌보는 은결은 이제 교체할 부품도 없는 구식 로봇이 되었다. 사실 은결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었다. 명정이 숨을 거둔 뒤 이불빨래를 하다가 넘어진 은결을 준교가 구하지 않았더라면 은결 역시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비눗물에 몸이 젖고 눈앞이 까매지며 시스템이 강제 종료되는 것을 은결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세제 한 스푼처럼 스르르 사라진 명정을 뒤따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명정은 인간이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세제가 가진 힘에 주목하고 싶다. 고작 한 스푼의 세제는 순식간에 물에 녹아 사라지지만 빨랫감에 스며들어 때를 쏙 빼준다. 그렇다면 로봇은 섬유 유연제 한 컵쯤 되지 않을까 싶다. 빨랫감에 스며든 세제는 물에 헹궈져 사라지지만 섬유 유연제는 바짝 마른 빨래에서 은은하게 향기를 풍긴다. 명정은 세상을 떠났지만 은결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로봇은 이미 세상에 스며들었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깊게 말이다. 


홍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