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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1 호 [독자마당] 이해와 공감의 오인, 젊은 꼰대

  • 작성일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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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327
이해람

유 승 현(역사콘텐츠학과·3)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능력의 문제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저자인 정문정 작가의 말이다. 예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고개를 갸우뚱했겠지만 지금은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꼰대라는 단어가 늙은이,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요즘에는 그들만큼이나 나이대가 엇비슷한 또래 꼰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필자는 특유의 허세와 과시로 무장한 그들을 대하는 게 불편했고, 머리로 이해하기란 더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언젠가 본인도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남는다. 꼰대는 어디서든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기에 ‘젊은 꼰대’는 어린 나이에 찾아온 불치병 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 꼰대를 싫어하면서도 젊은 나이에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대학생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꼰대의 특징을 꼬집은 글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술만 마시면 시도 때도 없이 ‘나 땐 말이야~’라며 군대 얘기를 시전하는 복학생, 과도한 예절과 서열 중시를 강요하는 꽉 막힌 선배, 타인의 개인사에 지나치게 관심 가지고 훈계하려는 동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렇게 20·30대 젊은이들이 젊은 꼰대가 되는 건 태생적으로 내재된 본인의 성향일 수도 있고 각박하고 치열해진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그 다름을 문제시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한술 더하면 그들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바로잡아주려고 도 넘는 참견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글의 서두에서 정문정 작가가 이야기한 공감능력의 부재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적인 배경과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을 거치는 상황적 배경을 고려해봤을 때, 젊은 꼰대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또래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강하다는 점이다. 자신은 험한 입시,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앞가림도 나름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보다 낮은 학벌을 가지거나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을 답답하고 불쌍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성공한 인생 우등생이라고 자부한다. 그들에게 남들이 현재 어떤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디자인하는지 보단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요소들을 잣대로 본인이 그들보다 앞선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아가 마치 본인보다 아래라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들을 교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의무감에 젖은 채 행동하는 것 같다. 둘째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꼰대짓에 진심을 담는다는 점이다. 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교훈, 가르침을 주려고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여기는데, 물론 의도야 좋겠지만 그것을 듣는 사람은 본인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충고, 애정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대다수의 것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인간관계란 축적된 시간의 양이 많다고 마냥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고 누구도 상대방의 모든 것을 정확히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설령 본인이 정말 맞고 상대의 행동이 틀리다고 해서 이를 지적할 때 그 결과가 좋을지도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는 별개로 ‘꼰대’라는 단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되 행태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의미가 의미인 만큼 단어를 오용하여 자신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는 상대방에게 무작정 꼰대라고 매도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그 사람이 실제로 꼰대짓을 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젊은 나이에 꼰대라고 낙인찍히면 그 이미지를 벗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업무상 상급자가 정당한 지시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고, 선후배 간 교류는 고사하고 화를 피하고자 서로 무관심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무엇이 꼰대 짓이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기에 그 단어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단어의 편리성과 파괴력을 알기에 우리는 더더욱 이 단어를 애용하는 것 아닐까.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히 ‘꼰대다, 아니다’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에 있어 본인만의 대인관계 기준을 확실히 정하고 소신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이를 의식해서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동하지도 말고 내 주관적인 견해를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말고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절대로 100%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 설사 내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타인의 주관에 깊숙이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관심이라는 이름의 송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